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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무윤]

무인들이 훈련장 위를 아무렇게나 나뒹굴었다. 흙먼지가 날리는 훈련장은 제대로 된 무기조차 없었다. 반토막이 난 목검, 부러진 채 달랑거리는 지푸라기 인형. 천은 고요한 서재 따위보다 이곳이야말로 자신과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왕궁의 한쪽을 크게 차지하고 있으면서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한다. 권력을 잡은 문인들의 무시와 멸시로 곪아가는 곳.

 

천은 발에 채이는 검을 손에 쥐고 휘둘렀다. 바닥에 누워있던 이들의 시선이 잠깐 천에게 닿는 듯도 했으나 이내 거두어졌다. 검을 쥐는 솜씨는 형편없었고 어린 팔 힘은 반쪽짜리 목검의 무게조차 제대로 버티지 못해 휘청였다. 그러나 천은 포기하지 않았다. 다시 한 번 힘껏 휘둘러 지푸라기 인형을 쳤다. 빗맞은 채 허공으로 흩어지는 지푸라기 몇 자락이 천의 볼에 달라붙었다.

 

천은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천을 감시하는 궁인들의 눈을 피해 훈련장을 찾았다. 검을 들고 휘두르면 복잡한 마음도 흩어지는 것 같았다. 열 살 남짓한 세자가 부러진 목검을 들고 훈련장 한쪽을 차지한 모습은 자연스러운 것이 되었다.

 

“세자 저하, 검을 배워보시겠습니까?”

 

천이 무엇을 하든 관심 없다는 태도로 일갈하던 자였다. 천이 훈련장 안에 들어오는 것을 막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훈련장을 편히 쓰라고 말하지도 않았다. 그저 무심한 눈으로 천이 오가는 것을 바라보기만 하던 자. 그가 천의 앞에 머리를 숙였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훈련원 도정 무윤이라 합니다.”

스토리텔러: 박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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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가우리 프로젝트 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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