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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꼬리파편 섬]

지독한 추위가 홍의 몸을 파고들었다. 날카로운 바람은 추위라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했다. 살을 에고, 뼛속을 쑤시는 듯한 고통이었다. 궁에서 가장 춥고 외진 곳, 낮이 되어야 햇빛 한 점이 겨우 들어오는 냉궁에서 자란 홍에게도 이런 추위는 처음이었다. 홍은 몸을 웅크렸다. 발에 물집이 잡혔다가 터지기를 반복하고, 퉁퉁 부르터서 걸을 수 없을 지경이 되어야 하루가 저물었다. 밤이 되면 병사들은 홍을 묶어놓고 저들끼리만 모닥불을 쬐었다. 잔인한 파도 소리가 홍의 자장가였다. 그렇게 수십 일을, 아니, 수백 일이었던가. 숫자를 세는 법을 다 깨우치지 못해 아는 숫자를 반복해서 세었다. 정확한 셈은 어려웠지만 한 살을 더 먹기 전이라는 것만은 확실했다. 그나마 요 며칠, 커다란 배를 타고 바다를 가로지르는 동안 다리만은 원 없이 쉴 수 있었다.

 

“죽은 듯이 살아라.”

 

안광이 형형한 장군이 홍의 목에 칼을 들이밀었다. 그는 추위를 느끼지 않는 사람 같았다. 수도에서부터 이 섬에 도착하는 긴 여정 동안 장군은 한결같이 매서운 표정이었다. 온종일 걷다가 지쳐 차라리 쓰러지고 싶었을 때, 주저앉아 울고 싶었을 때도 이를 악물고 걸어야 했던 이유였다. 장군은 홍이 쓰러지면 그대로 버려두고 궁으로 돌아갈 것 같았다. 장군에게서 버려지면 그나마 주어지던 딱딱한 밥이나 맹수로부터 지켜지는 잠자리도 사라진다. 홍은 죽을 수 없었다. 죽으면 안 됐다.

 

꼭 살아남으세요.

 

어머니의 마지막 말이 생생하게 떠올랐다가 가라앉았다. 눈이 뜨거워졌다. 홍은 칼끝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스토리텔러: 박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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