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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의문점]

이미 누군가 입구를 열었던 흔적이 남은 나우 왕릉을 해우와 홍은 바라본다. 사 씨는 한 발 뒤에서 침묵을 지킨다. 홍은 그렇게 말이 많던 계화가 어색해 몇 번이고 안색을 살폈으나 사 씨는 심하게 떨리는 눈동자를 붙잡을 정신도 없어보였다. 해우는 천천히 왕릉의 입구를 연다. 끼긱거리는 소리가 잠시 들렸으나 이내 부드럽게 열린다. 그 안에 채워진 것은 각종 서적들이다. 이무기와 용에 대한 기록들. 역린까지는 아니지만 분명히 가우리 모든 역사를 필적할 양이였다. 해우는 성큼성큼 안으로 왕릉의 안으로 들어간다. 홍은 해우를 따라 들어갔으나 끝까지 가지는 않는다. 해우와 사 씨가 깊은 안쪽까지 들어가게 내버려 두고 홍은 자료들을 눈으로 훑는다. 홍이 손을 뻗어 한 책을 펼치자 22대 오수의 이름과 이무기 해우가 기록되어 있다. 그 이후의 기록은 없다. 마치 가우리의 역사가 멈춰버린 것만 같다. 쿵, 순간 왕릉이 흔들린다.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홍은 어두운 내부를 바라보다 무덤 속으로 향한다.

 

금으로 치장된 계단을 따라 길게 내려가다 보면, 바닥에 주저앉은 해우와 횃불을 들고 그런 해우를 바라보는 사 씨가 보인다. 아까의 굉음은 해우가 낸 소리인 모양이었다. 해우는 무너진 상태 그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홍은 시선을 돌려 사 씨를 바라본다. 그리고 사 씨가 가리고 있는 관을 바라본다. 다가가자 보이는 것은 30 후반 즈음의 남자다. 긴 흑발과 티 없이 맑은 피부는 마치 잠을 자고 있는 듯한... 홍은 숨을 들이쉰다. 주오수의 시체가 썩지 않았다. 몇 백년이 흘렀으나 시체가 고스란히 관에 누워있다. 홍은 차마 오수를 향해 손을 뻗지 못한다. 사 씨가 입을 달싹인다. 과거의 연을 끊어내셔야 합니다. 사형 선고를 내리는 듯한 표정이다. 해우는 마치 제 친구를 죽여야 하는 사형집행인의 표정으로 사 씨를 바라본다. 홍은 알 수 있다. 저 둘 사이에 자신이 끼어 들 수 없다고 말이다. 자신은 그 무엇도 알지 못하니까.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모두가 홍에게 침묵을 유지했다. 알면 안 된다는 양. 자신이 이뤄낸 것은 무엇도 없다. 그 무엇도 이뤄내지 못했다. 운명에 휩쓸렸을 뿐이다. 애초에 용이란 존재는 인간과 너무나도 다른 존재가 아닌가. 이 섬의 주인은... 용이 아닌가? 인간이 그 육체에 자리 잡은 이유는 무엇이지? 문득 사 씨가 홍을 바라본다. 홍의 어깨를 잡는 손길이 절박하다.

 

“그 어떤 것에도 의문을 품지 마세요.”

 

절박한 행동과 달리 그 표정은 너무나도 덤덤하다. 계화 시절의 표정은 연기였나 싶을 정도였다.

스토리텔러: 안정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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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가우리 프로젝트 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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