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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무너진 것]

해가 떠오르는 곳. 가장 높이 위치한 궁의 아래에 있는 거대한 용의 눈물은 이런 눈보라 속에서도 얼어붙지 않는다. 말디 맑은 물속의 아래는 깊이를 가늠할 수도 없다. 용호의 옆으로 제사를 지낼 때 왕과 용이 앉을 옥좌가 있는 황금 단상이 점차 밝아오는 하늘에 비추어 모습을 드러낸다. 그와 떨어진 곳으로 22대 왕 오수부터 선 왕들의 능이 보인다. 어디로 가라는 거야? 홍은 거친 숨을 몰아쉰다. 이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끝나고 싶진 않다. 어디로 가야해? 홍의 뒤로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해우다.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온 해우는 피부가 검게 물들어 있다. 마치 타다 남은 잿더미 같았다. 홍은 해우를 바라보다 무시하고 호수로 성큼성큼 걷는다.

 

해우는 그 뒤를 말없이 따른다. 바닥에 처박힌 시선이 홍을 차마 곧게 바라보지 못한다. 홍의 발꿈치만 바라본다. 해우는 오래 전 여기서 오수를 처음 봤던 날을 기억한다. 그 말갛게 웃던 웃음과 자신의 일부나 다름없다 확신했던 그 순간을 말이다. 지금 해우의 앞에 오수의 여의주를 가지고 있는 홍이 있다. 아까까지 휘몰아치던 감정이 싸늘하게 내려앉는다. 문득 해우의 눈에 왕릉이 담긴다. 어리석다 라는 말의 의미가 담긴, 나우 왕의 왕릉이다. 헛웃음이 터져 나온다. 왜 나를 배신했느냐고 해우는 묻고 싶었다. 무엇이 너를 변하게 만들었냐고. 하지만 이 이유는 홍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것이다. 홍이 해우에게 물어야 할 것이다. 왜 자신을 이용했느냐고. 왜 자신의 모든 인생을 이렇게 만들어 버린 거냐고. 차라리 만나지 말야 했다. 자신은 오래 전 죽었어야 하는 이무기였다.

 

홍이 걸음이 멈춘다. 천천히 몸을 돌려 해우를 바라본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해우에게 지쳐 먼저 움직인 것이다. 왜... 홍이 천천히 입을 연다. 검은 눈동자에 눈물이 맺힌다. 울고 싶지 않았는데. 서럽고 억울했다. 억울했다. 자신만 이렇게 전전긍긍했다는 사실이. 홍의 시선이 바닥에 처박힌다. 그리고 한 글자 한 글자 목소리에 힘을 준다.

 

“꼴도 보기도 싫어.”

스토리텔러: 안정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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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가우리 프로젝트 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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