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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변화]

백성들이 안에서 반란을 일으켰다는 말을 들은 홍은 스스로가 놀랄 만큼 덤덤했다. 백성들도 참을 만큼 참았다. 가우리의 풍요는 아주 먼 과거의 일이고 부패하는 윗선에 수도에 사는 이들이 아니면 얼어 죽거나 다른 나라로 도망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폭정이라니. 홍이 없었더라면 천천히 모든 백성을 잃고 사라졌거나 누군가에 의해 반란이 일어났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홍은 감동하지 않았다. 뿌듯해 하지도 않았다. 그냥 일어났어야 하는 일이였다며 도와준 이들에게 감사의 마음만 품는다. 그리고 그들을 과소평가해 미안하다는 마음만. 그는 난생 처음 보는 붉은 수도에서 눈을 들어 올려, 저 멀리 궁이 있는 자리를 바라본다. 늘 갇혀 지내거나 감히 시선을 들어 바라보지도 못했던 푸른 기와가 눈에 박힌다. 아주 조금만 더 가면 되었다. 어느새 그의 물집 잡혔던 손은 굳게 굳은살이 박혀 있었다. 홍이 말머리를 옆으로 튼다. 계화가 말릴 틈도 없었다. 아니, 말릴 생각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말머리를 틀어 해우가 있는 불길로 달려 나가는 붉은 왕을 전과 같이 대견하다는 표정으로 보고 있었으니까.

해우가 만든 불길인지 아니면 원래 있던 불길인지 홍이 말을 몰아 들어가는 것을 말리는 군사들은 없었다. 그곳에 해우가 있는 것을 알았고, 주변에 왕의 군사가 몇 없었으며, 그마저도 해우가 숨통을 끊어두었기 때문이었다. 만약을 대비해 군사 두 명이 눈짓을 하더니 뒤 쪽으로 따라 붙기는 했으나 홍도 약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그들은 알았다. 힘차게 말을 몰던 홍은 익숙한 흐름으로 해우를 쉽게 발견했다. 손에는 군사 한 명의 목을 틀어쥐고 있었는데, 어찌나 세게 잡아 쥐었는지 그의 목이 얇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 앞으로 한 백성이 넘어진 채로 해우를 놀라움과 감탄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붉게 칠해진 얼굴에 홍은 조금 주춤한다. 새파랗게 질려 그대로 굳어버린 천의 군사를 멀리 던지던 해우는 홍을 돌아본다. 왜 왔어? 평소와 다름없는 시큰둥한 투다. 홍은 백성에게 손을 내밀며 답한다.

“지체할 시간 없어, 궁으로 바로 가자.” 해우는 잠시 말이 없다 고개를 젓는다.

“아직 주천의 군대가 여기 있잖아. 백성들이 먼저야.”

“왕을 죽이면 자연히 끝나는 일이야. 여기서 힘 뺄 수는 없어.”

“백성이 먼저라니까.” 해우의 말이 신경질적으로 변한다. 그 말에 홍은 웃는다.

“넌 왕의 덕목으로 백성 우선, 인애 같은 건 안 가르쳐줬잖아.” 해우가 침묵한다. 홍을 처음 만났을 때의 해우는 인간에 대해 분노를 넘어서 혐오를 가지고 있었고 지금도 완전히 없다고 할 수는 없었다. 홍을 가르칠 때 백성 우선이고 인애고 그런 건 가르치지도 않았을 뿐더러 되려 그것들을 왜 도와 주냐며 역정을 냈었다. 난 인간이야, 해우. 어느 날 홍이 말했던 이야기를 해우는 떠올린다. 옛날과 반대가 된 상황에 입만 다물고 눈동자만 이리저리 굴려댄다. 제 옷소매로 백성의 얼굴을 닦아주던 홍은 해우를 바라본다. 얼굴 만면에 놀리는 티가 가득하다. 이런 상황이었지만 홍은 제 선생님이자 친구이자... 말하면 입만 아프지. 어쨌든 해우의 변화가 나름 뿌듯했다.

“백성이 먼저야?”

그렇지만 홍은 때때로 지나칠 정도로 철저하게 공과 사를 구분할 줄 알았다. 전래 동화에 나오는 영웅 마냥 정과 옳음에 집착하지 않았다. 해우가 정말로 아니, 라고 말한다면 정말로 백성들은 둘째로 둘 것이었다. 그의 말대로 천만 죽이면 끝나는 일이다. 해우는 고개를 끄덕인다. 백성이 먼저야. 오수와 왕의 덕목에 대해 가르침을 받을 때, 선생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하던 그 이야기를 자신의 입으로 되풀이한다. 홍이 환하게 웃는다.

“아직 배울 게 많네. 왕이 되면 더 도와줘야겠어.”

스토리텔러: 안정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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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가우리 프로젝트 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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