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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우 [변화]

수도 외곽을 전부 불태울 심상으로 굳게 마음을 다잡고 있던 해우는 허무할 만큼 활짝 열린 수도의 성문을 보고 걸음을 멈춘다. 안은 온통 난장판으로 붉은 빛으로 가득했다. 피 인지 염료인지 모를 것들이 수도 입구부터 길게 물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로 군사들과 군복을 입지 않은 사람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민가 몇 채에서는 불길이 타올랐고 어디선가 함성 소리가 들려왔다. 해우가 아는 수도는 이 모습과 반대였다. 그도 그럴게 수도에 칼을 뽑고 대립을 할 일은 전혀 없었다. 애초에 왕의 권력과 힘은 절대적이었고, 백성들에게만 포함되는 것이 아닌 타국의 사람들도 가우리라면 건드리지도 못했다. 옆에 이무기를 세워둔 나라는 가우리 밖에 없었다. 이 평화와 안전에 대한 보답으로 가우리는 타국이 먼저 건드리지 않는 이상 침략하지도 않았고 점령하지도 않았다. 가우리만이 그들의 안전지대였으니. 말발굽이 피와 염료로 질척이는 땅을 짓이긴다. 해우는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을 터트린다. 네가 결국 바란 게 이거냐, 오수? 어쩐지 참담했다. 참담할 수밖에. 자신을 배신한 놈이었지만 자신을 배신했으니 그 후손은 떵떵거리며 멋지게 살아야 하는 게 아닌가? 그의 결과물은 이랬다. 마지막에 오수가 후회했기를 바랐다. 그래서 그렇게나 숨기고 건네주지 않았던 여의주를 홍에게 주었다고 그렇게 믿고 싶었다. 원망은 됐다. 몇백년 동안 원망만 했으니 이제 지쳤다. 그리고 홍이 되돌려 놓을 것이라는 희망이 생겼다. 비록 제 몸뚱이가 이렇게 되었더라도.

너무나도 바뀌어 버린 붉은 수도 안으로 해우는 들어간다. 장식품이나 다름없는 칼을 뽑아 들면서 절대 말할 리 없겠다 확신했던 말을 그가 내뱉었다. 군사들은 그 행동의 뜻을 잘 알았다. 군사들은 그 말의 의미를 알았다.

 

“백성들을 지켜!”

 

뒤 쪽에 있는 홍이 보았으면 괜히 뿌듯한 눈으로 해우를 봤을지도 모르겠다.

스토리텔러: 안정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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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가우리 프로젝트 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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