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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첫 번째 마을]

해우는 황망한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그들이 서 있는 곳은 분명 마을 안이었으나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땅은 딱딱하게 얼어 살얼음이 끼어있었고 허름하게 늘어선 집들에 단단히 걸린 빗장만이 사람이 있음을 암시했다. 끔찍했다. 나무 한 그루 제대로 자라지 않는 땅이었다.

 

“사람들은 뭘 먹고 살지?”

 

섬에서는 나무가 자랐다. 뿌리가 약했지만 싹이 텄고, 적은 양이었지만 깨끗한 물이 솟았다. 그러나 이곳은 얼지 않은 땅을 찾을 수가 없었고, 마을 입구에 있던 우물은 폐쇄한 지 오래인 것 같았다.

 

“한 달에 한 번쯤은 수도에서 상인들이 와요. 그 전에 식량이 떨어지면, 끔찍한 일이지만….”

 

계화가 잠시 말을 멈췄다. 홍은 석 달에 한 번쯤 섬에 모습을 보였던 상인들을 떠올렸다. 해우의 시선이 계화를 향했다. 세로로 쭉 찢어진 동공이 가늘어졌다.

 

“어린아이를 먹어요. 자기 자식을 먹는 이들도 있고, 차마 그러지 못해 다른 집 아이를 훔치기도 하고…. 하지만 왕께 인육을 드시게 하지는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내내 흐린 시선으로 땅을 바라보던 홍조차 놀라 눈을 크게 떴다. 계화의 목소리는 다시 쾌활해졌다. 해우의 핏빛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인간이 인간을 먹는다. 어린 자식을 잡아먹고, 남의 아이를 훔쳐다 먹는다. 그건 해우가 아는 가우리가 아니었다. 가우리는 늘 풍요로웠고, 땅에서 나는 곡식은 충만했으며 빗장이 걸린 집이 없었다. 나누기를 아끼지 않았으며 전쟁도 기근도 없었다.

 

“놀라실 거 없어요, 다 이러니까요. 세상이 바뀌어야죠. 걱정할 거 없어요! 우리에겐 새 왕이 있잖아요.”

 

홍은 인상을 찌푸렸다. 홍은 왕이 아니었다. 해우는 홍의 붉은 등이 증거라고, 왕이 될 운명이라고 떠들어댔고 이따금 어머니의 유언이 머릿속을 맴돌기도 했으나 그건 망령 같은 생각이었다. 왕은 주천이고, 그가 가우리를 통치한다. 그에게 저항하면 죽는다. 홍은 흐릿한 기억 속에서 비릿한 피 냄새와 뜰을 붉게 물들였던 어머니의 시신을 떠올렸다. 새 왕 같은 것은 없었다. 계화가 무언가 착각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때였다.

 

장정 하나가 해우의 발밑을 가리키며 입을 뻐끔거렸다. 해우가 선 땅의 살얼음이 천천히 녹고 있었다. 하얗게 말라붙어있던 땅이 젖은 흙빛으로 돌아왔다. 이게 해우가, 이무기가 가진 능력인가. 홍은 생경한 것을 마주한 얼굴로 해우를 바라봤다. 해우가 땅을 녹일 수 있다면, 그래서 이 땅이 녹는다면, 적어도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지는 않을지도 몰랐다.

 

“땅을 녹여줘, 해우.”

 

해우의 얼굴에 당황이 묻어났다. 홍은 단호했다. 단전에서부터 열이 끓어올라 발 아래로 빠져나갔다. 해우는 홍의 명령에 거부할 수 없음을 알았다. 이무기는 자신에게 주어진 여의주의 말에 복종할 수밖에 없었다.

스토리텔러: 박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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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가우리 프로젝트 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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