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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붉은 등]

“아니라는 말 좀!”

 

홍은 또다시 날아오는 윽박에 몸을 웅크렸다. 계승자가 아니라서 아니라 했고, 왕도 아니라서 아니라 했는데 자신을 해우라 소개한 사람은 아니라는 말이 들릴 때마다 소리를 질렀다. 제 등에 문양이 있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문양이 붉어졌다느니, 힘을 빼앗겼다느니 하는 말은 좀처럼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 문양은 흐리고 약하다. 계승자는 세자 저하고, 한참 전에 이무기를 데리고 왕이 되셨어. 그러니까, 그러니까 나는 계승자가 아니야!”

 

홍은 단전에서부터 힘을 끌어올려 빽 소리를 질렀다. 씩씩대는 홍의 기색에 놀란 해우가 주춤하자 홍은 질세라 눈에 힘을 바짝 주었다.

 

“원래 왕의 문양만 붉어지는 거야. 그런데 네가 내 힘을 흡수해서 붉어졌잖아, 이 꼬맹아!”

“꼬맹이가 아니다, 홍이야!”

 

해우와 홍의 목소리가 번갈아 동굴을 울렸다. 미묘한 정적이 흐르는 사이 파도 소리가 절벽을 타고 올라와 동굴 안을 울렸다. 절벽 틈새에 절묘하게 난 동굴. 해우는 열심히 감춰왔던 은신처가 들킬까 봐 소리 지르기를 멈추고 입을 다물었다.

 

“좋아, 주홍. 주홍이란 말이지?”

 

홍은 씩씩거리며 해우를 노려보았다. 해우는 똑같이 홍을 노려보다가 홱 고개를 돌렸다. 꼬맹이와 눈싸움을 해봐야 얻는 게 없었다.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고, 다시 천천히 내뱉었다. 이 꼬맹이는 이용할 가치가 있었다. 어쩌면 해우를 용으로 만들어줄 열쇠일지도 몰랐다. 그래, 소중한 열쇠에게는 그만한 대접을 해주어야 한다.

 

“난 네가 갑자기 쓰러져서 돌봐준 거야, 그러니까 내가 네 은인이라는 거지.”

 

의심으로 가늘어진 홍의 눈을 보며 해우는 혀를 찼다. 의심 많은 꼬맹이 같으니라고. 하지만 거짓은 아니었다. 해우를 보자마자 쓰러진 홍은 분명히 문양통을 앓는 모양새였고, 제 힘은 모두 빠져나가 홍에게로 들어갔다. 제 힘을 빨아들인 존재를 버려두고 올 수는 없어 덜렁 들고 은신처까지 왔으니, 아픈 꼬맹이를 돌봐주기는 했다. 해우는 지금까지 윽박질렀던 것이 없는 일인 양, 입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을 뱉었다.

 

“정말...?”

“그래. 지금도 등이 욱신욱신 아프지? 색이 바뀌면서 문양통을 앓는 거야. 내가 약초라도 먹여줬으니 그만한 거지, 너 혼자였으면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버렸을걸.”

 

죽어버렸을지도 모른다. 홍은 지레 겁을 먹고 움츠러들었다. 죽으면 안 된다. 죽을 수 없었다. 홍은 아직도 저릿하게 아픈 등을 손으로 더듬었다. 잔뜩 기가 죽어 해우의 눈치를 살피는 모습은 안쓰럽기까지 했다.

 

“걱정하지 마. 문양통에 대해서는 나도 잘 아니까. 이제부터 내가 돌봐줄게.”

스토리텔러: 박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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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가우리 프로젝트 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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