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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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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이 역린의 중앙에 가까워졌을 때 사 씨는 이미 홍을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것도 예언을 받은 내용인지는 알 수 없다. 사 씨의 뒤로 용의 흔적이 보인다. 가우리에 유일하게 살아남은 용들의 기록이었다. 제사장 뱀들만의 공간이다. 문득 홍은 소름이 돋는다. 자신이 들어와서는 안 되는 공간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다. 심장 한 켠이 무겁게 내려앉는 기분이 든다. 홍은 이 악물고 버티고 선다. 사 씨는 한결같은 침착하고 냉담한 얼굴로 홍을 바라본다.

 

“무엇을 바라십니까?”

 

속내를 알 수 없는 녹 빛 눈동자를 바라본다. 계화와 같은 뱀의 동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사 씨는 늘 예언을 전했다. 한 번도 답을 알려주지 않았으며, 질문을 해도 의뭉스러운 조언만 남겨주지 않았던가. 그런 사 씨가 예언도 조언도 담기지 않은 순수한 질문을 던진다. 언제나 사 씨는 가우리의 이무기와 용을 위해서만 입을 열었다. 역린의 중앙에서, 가우리의 모든 용들의 기록이 남은 이 역린에서 사 씨는 어김없이 그들을 위해 입을 연다. 홍은 사 씨를 똑바로 응시한다.

 

“지금 당장 수도로 가겠습니다.”

 

홍의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도 간결하고 단호하다. 그렇기에 스스로 더 확신한다.

 

“가우리 모두를 구해낼 겁니다.”

 

붉은 왕. 사 씨는 그렇게 생각한다. 붉은 왕의 소문을 낸 것은 자신이었으나 그 소문이 허울로 가득 찬 것은 아니다. 용의 힘을 탐내 분수를 모르는 그들을 증오했으나 가우리의 용들은 분명히 그들을 사랑했다. 그것은 마지막 이무기였던 해우도 마찬가지였다. 홍의 붉은 표식이오수를 향한 해우의 신뢰와 사랑을 보여주고 있었다. 불쌍한 분. 가엾은 우리들의 주인. 사 씨는 감히 분수를 모르고 해우를 동정한다. 이 인간은 다를까? 이미 더럽혀진 해우의 여의주를 이어 받은 인간이었다. 사 씨는 오수를 모르지만 오수를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오수의 이야기는 뼈저리게 계승되고 기록되어 왔다. 예언은 홍의 탄생 날 말했다. 붉은 왕이 왔노라. 붉은 증표는 인간들의 왕으로 즉위한 사람만 가질 수 있었다. 붉은 증표는 용의 신뢰를 받은 인간만 가질 수 있었다. 사 씨는 이제는 오래 뜨고 있으면 바싹 말라버리는 눈을 부릅뜨고 홍을 자신의 눈에 담는다. 용의 보호를 받는 인간들의 왕. 사 씨는 천천히 허리를 굽힌다. 뱀의 육체를 버리고 인간의 몸을 얻었으니 자신의 왕이나 다름없다. 결국 왕이 돌아온 것이다. 이번 기회가 아니면 다신 없을 기회였다.

 

“바라시는 대로 하소서.”

스토리텔러: 안정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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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가우리 프로젝트 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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