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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적응]

꼬리 파편 섬에서의 적응은 어렵지 않았다. 이곳까지 오는 길목과 비교하면 춥지 않았고, 녹은 땅이 있어 작물을 지어 먹었다. 섬사람들은 다른 꼬리 파편 섬보다 이곳이 유독 따스하고 온화하다고 했다. 섬사람들은 홍을 퍽 귀여워하는 눈치였다. 끼니때가 되면 돌아가면서 음식을 나눠주었고 빨래나 청소 같은 살림도 가르쳐주었다. 손바닥만큼 새로 녹은 땅을 내주어 씨앗도 심을 수 있었다. 홍이 섬에 도착했던 날 주먹밥을 주었던 김씨는 홍에게 새 옷을 지어주었다. 김씨의 딸 초이나 옆집 강이 같은 홍 또래의 아이들과도 금방 친해졌다. 홍은 천천히 섬 생활에 익숙해졌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상한 일이 연달아 일어났다. 친구들과 잠시 놀러 다녀오거나 심었던 씨앗을 살펴보러 다녀오면 널어둔 옷의 위치가 조금 넓게 벌어져 있다거나, 지금처럼 담 너머로 낯선 기척이 들리기도 했다. 막상 기척이 느껴진 곳으로 달려가 확인하면 감쪽같이 사라져버렸으니 친구들이나 섬사람들도 아니었다. 이무기일지도 몰라. 홍은 두 주먹을 꼭 쥐었다. 오늘에야말로 정체를 확인하고 쫓아낼 생각이었다. 섬사람들도 홍을 좋아했으니 도와줄 것이 분명했다. 홍은 모르는 척 문을 열고 방 안에 들어갔다. 이렇게 방 안에 들어가고 나면, 문 앞을 기웃거리는 기척이 다시 느껴지곤 했다.

 

“누구냐!”

 

예상대로 기척이 느껴졌을 때 호기롭게 문을 연 홍은 인상을 찌푸려야 했다. 머리가 울리고 등이 찢어지는 것처럼 아팠다. 빨간 머리카락. 피처럼 빨간. 빨간 피. 홍은 발작하듯 몸을 떨며 고개를 저었다. 등의 고통은 점점 심해졌다. 너무 아파 소리를 지를 수도 없었다. 그대로 시야가 어두워졌다.

스토리텔러: 박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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