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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충동]

“괜찮으십니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질문한 쪽도 답을 요구하지 않았다.

 

주홍은 문양을 새기고 태어났다. 있어서는 안 될 두 번째 계승자, 권력을 빼앗기에 가장 큰 명분을 가진 아이. 그럼에도 주천은 주홍에게 사형 대신 유배를 명했다. 이례적인 일이었다. 왕의 핏줄을 타고난 이들은 모두 죽었으나 주홍만은 살아남았다. 낯선 사실에 궁이 술렁였다. 발 없는 말이 궁 곳곳을 빠르게 돌아다녔다.

 

 

공주가 몹쓸 병에 걸려서 어차피 죽을 사람이었대.

어릴 때부터 냉궁에서 살았으니 그럴 만도 하지.

아니야, 왕이 용의 저주를 두려워해서 그렇대.

 

 

소문은 이무기를 통해 왕의 귀에 들어왔다. 소문에는 무엇 하나 옳은 말이 없었다. 그러나 공주가 어차피 죽을 사람이라는 말에는 어느 정도 일리가 있었다. 주홍의 유배지인 꼬리 파편 섬은 꽁꽁 얼어버린 가우리의 땅 중에서도 가장 혹독한 추위에 시달리는 곳이었다. 땅은 작물을 기르지 않았고 바다와 바람은 인간을 품지 않았다. 태어난 순간부터 냉궁에 갇혀 겨우 삶을 연명해온 주홍이 꼬리 파편 섬에서 살아남을 리가 없었다.

열 살이나 되었을까. 주천은 바들바들 떨다가 끝내 실신했던 작은 공주를 떠올렸다. 한 뼘이나 될까 싶은 조그만 등에도 자신과 같은 검은 용이 자리했을 것이다. 그 사실을 아는 이들은 조롱했을 것이고, 모르는 이들은 냉궁에 갇힌 공주를 외면했을 것이다. 머리가 아팠다.

 

공주는 그곳에서 죽을 것이다. 어쩌면 운이 좋아 살아남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공주는 유배지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었다. 무엇보다 공주에게는 이무기가 없고, 자신에게는 은해가 있었다. 이무기가 없는 왕은 종이 인형과 같다. 그러니 공주가 살아남든지 죽어버리든지 상관없었다.

스토리텔러: 박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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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가우리 프로젝트 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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