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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우 [꿈의 파편]

바람이 종이와 종이 사이에 스며들었다 흔들린다. 사 씨가 세자와 이무기의 수업에 참여하는 일은 거의 없었으나 이번만은 달랐다. 가우리의 역사를 그들 보다 더 잘 아는 이가 없었고, 이번대의 사 씨는 학구열이 대단했기 때문이다. 열정 넘치는 말투로 가우리의 건국신화부터 시작해 정랑의 업적까지 말하는 그를 오수와 해우는 건성건성 고개만 주억거렸다. 잠깐 쉴까요? 사 씨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오수의 머리가 쿵, 책상으로 추락했다. 이윽고 아야야 하고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대체 몇 번이나 들어야 하냐며 꿍얼거리는 오수를 사 씨는 본 채 만 채 했다.

 

“너 내가 죽으면 날 먹어서 낙원으로 갈 거야?”

“그렇겠지. 내가 뭔 수로 여의주를 네 몸에서 빼내냐?”

“그것도 그렇지만... 이왕이면 내가 나고 자란 땅에 묻히고 싶었어.”

 

오수는 실없는 소리라며 말갛게 웃었다. 그러면서 해우가 낙원으로 가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며 말을 덧붙였다. 해우는 사 씨의 눈치를 봤다. 늙은 뱀은 유독 해우에게 더 엄하게 굴었다. 이번에도 엿듣고 잔소리를 하면 곤란했다. 슬금슬금 오수 옆으로 다가온 해우는 작게 속닥거린다. 내가 낙원으로 가면, 가우리로 몰래 내려올게. 내가 정랑한테 들었는데 계승자는 죽는 게 아니라 여의주에 계속 혼으로 남아있는다고 했거든. 해우는 언젠가부터 오수에게 물들어 버린 말간 웃음을 지었다. 아마도 불가능 하겠지만. 어린 이무기와 세자는 약속이다, 라며 사 씨의 눈치를 보며 약속했다. 어리기에 할 수 있는 것들. 아무 것도 탐내지 않았기에.

스토리텔러: 안정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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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가우리 프로젝트 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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