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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해 [충사]

맹세를 지키지 못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마치 무뎌진 검과 같이.

 

그의 피가 내 몸을 타고 흘렀다. 흐른 피는 나의 것과 섞여 바다를 붉게 물들였다. 천의 숨결이 흐릿해지자 그의 기운도 점점 옅어졌다. 나의 힘도 그와 함께 사라져가고 있었다.

 

그가 숨을 몰아쉬며 몸을 떨었다. 고통에 저항할 힘조차 없다는 사실 때문이었을까, 그는 불안해하고 있었다. 나는 그를 끌어안았다. 붉게 물든 등이 보였다. 잠시 후 안정된 그를 향해 나는 미소를 지었다. 적어도 마지막에는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기를 바랐다.

스토리텔러: 고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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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가우리 프로젝트 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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