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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하룡제]
하룡제가 시작됐다. 천의 즉위 이후 백성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첫 번째 행사였다. 얼어붙은 땅을 핑계 삼아 수도에서만 조촐하게 진행했던 하룡제를 대항구까지 내려가 치르기로 한 이유였다. 상의를 벗고 몸을 드러낸 천의 뒤에 은해가 붓을 들고 서 있었다. 붓에서 붉은 액체가 뚝뚝 떨어졌다. 은해는 핏빛으로 흠뻑 젖은 붓을 벼루에 훑어 털을 가지런히 정리했다. 붓이 천의 등에 자리한 문양을 덧그렸다. 검은 문양이 천천히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끝났습니다.”
천의 등에 자리한 문양이 붉어졌다. ‘붉은 왕’이었다.
천이 몸을 일으켰다. 하룡제의 의복은 등이 열려있어 백성들에게 용의 가호를 드러내게 했다. 붉어진 계승자의 표식이 용의 증거였다. 왕이 되면 문양이 붉게 변한다. 그래야 했다. 주홍조차 그 붉은 등을 드러내 ‘붉은 왕’이 되지 않았나. 그러나 천의 등은 여전히 태초의 검은 문양 그대로였다. 아무리 기다려도 문양은 붉어지지 않았다. 천이 입술을 짓씹었다.
“시간이 되었습니다.”
문밖에서 어린 궁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천이 문가로 다가서자 굳게 닫혔던 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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