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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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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은 춤을 추듯이 너울너울 흔들렸다. 마을의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이 타오르는 불 너머로 주홍은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죽은 듯이 사십시오.”

 

기억 속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울렸다. 열기가 주홍의 피부마저 녹일 것처럼 가까이 다가왔다. 주홍은 열기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처럼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불길 사이로 흐릿하게 피 냄새가 났다. 주홍은 불길 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사람들을 구해야 했다. 어쩌면, 살아있는 사람이 있을지도 몰랐다. 어쩌면, 어쩌면. 끔찍한 희망이 홍의 발목을 옭아맸다. 돌을 매단 것처럼 느리던 홍의 걸음이 빨라지다가, 이내는 달리기로 변했다. 눈가가 뜨거워졌으나 그것이 불길 때문인지, 다른 이유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스토리텔러: 박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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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가우리 프로젝트 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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