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수 [령의 기억]
눈을 뜨면 무덤과 같은 고요와 어둠만 짙게 깔려있다. 무덤과 같은? 허, 오수는 헛웃음을 터트린다. 제 죽은 육체를 보는 기분이란. 제 몸에 분명히 남아있는 여의주의 기운이 느껴졌다. 주인 잃은 여의주는 하릴없이 그의 영혼만 붙잡고 늘어지고 있었다. 죽어도 죽지 못하는 상태가 된 것이다. 차라리 잡아먹히는 인생이 나을지도 모르겠는 걸. 유일하게 남은 용의 기록들을 눈으로 슥 훑었다. 그리고 ‘그’가 말을 건 것은 그 순간이었다.
어리석은 아이야. 오수는 눈만 꿈벅였다. 누구? 오수가 주변을 둘러봤다. 이 무덤에 자신 외의 존재가 있을 리가 없었다. 그가 말했다. 나는 가우리의 어머니이자 그 자체이니라. 오수는, 그 날 그 순간을 뼈저리게 후회했다. 그의 말을 듣지 말 걸 하고. 달라지는 건 없을 테지만 그렇게 생각했다.
제발 죽여줘. 오수는 몇 천 번째일지도 모를 바람을 내뱉었다. 그는 얼어붙은 가우리를 보았다. 죽어가는 해우를 보았다. 해우에게 뜯어 먹히는 자신의 자손들을 보았다. 백성들은 급기야 서로에게 창을 들이 밀었고, 서로를 잡아먹었으며 대신관료들은 저들끼리 배를 채우기 바빴다. 가우리는 그야말로 용의 가호를 잃고 ... 용의 가호? 오수는 제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피도 무슨 맛도 나지 않았지만 신경질적으로 씹어댔다. 애초에 낙원의 존재가 땅을 신경 쓸 이유가 무엇일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으나 오수는 침묵했다. 무덤에 갇힌 시체 신세가 되고 나서부터는 그는 침묵을 선택했다. 더 이상의 호기심은 독이다. 그는 호기심을 바라지 않았다. 인간이 자신의 뜻대로 휩쓸리길 바랐다. 정말로 그는 가우리 전체의 부모였으며 운명이었다. 그가 곧 가우리었다. 그의 뜻이 가우리의 운명이었다. 어쩌면 그가 사 씨의 예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미치자 오수는 머리를 벽에 쿵, 박았다. 아프지도 않았지만 그렇게 하면 적어도 생각을 잠시 멈출 수는 있었다. 사 씨는 그를 감추고 싶었던 것이다. 가우리를.
“선택했어요, 가우리.”
그래, 답해보렴.
“이번에 태어나는 아이로 고를래요.”
그래? 이번 대에는 이미 고른 아이가 있는데.
오수는 침묵했다.
그리고 답했다.
“어쩔 수 없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