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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우 [시작의 파편]

똑바로 보세요. 이 힘은 당신의 근원입니다.

힘의 불빛을 똑바로 보고 오셔야 합니다. 이 빛이 당신을 이끌어 줄 거예요.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렸다. 정확히는 붙잡고 끌려왔다고 해야 하나. 눈을 떠보니 푸른 사방에 위쪽에서 실타래 같은 흰 빛줄기가 떨어져 내렸다. 내 주변만 붉게 빛이 났다. 숨을 내쉴 때마다 작은 물방울이 위로 올라갔다. 물방울을 따라 제 머리 위를 바라보다 문득 발아래를 내려 봤다. 깊게 내리 파여진 골짜기들을 보며 적어도 저곳은 내가 갈 곳이 아니겠다 싶었다. 쿵쿵. 작은 박동이 점점 커져 몸을 가득 메웠다. 비늘 뻗친 세 갈래로 갈라진 손을 심장 부근에 가져다 대었다. 분명 여기서 잘 뛰고 있는데 쿵쿵, 뛰는 심장이 다른 사람에게 있는 것 같았다. 묘했다. 자신을 계속 부르던 목소리가 어느덧 멎어 있었다.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멍하니 푸른 물결에 몸을 맡겼다. 붉게 빛나던 몸이 천천히 멎어들고 있었다. 누군가 속삭인다. 이리로 오세요. 똑바로 당신의 힘을 따라 오세요. 나를 부르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보이는 것은 멍청한 얼굴의 ... 근원이었다. 믿고 싶지 않아도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끌려오는 내내 끊임없이 속삭이던 목소리가 똑바로 보고 가라고 말하던 등불 같은 힘. 내 목적지가 코앞이었다. 힘차게 꼬리를 흔들어 그에게 다가섰다.

목탄 같은 머리카락이 푸른 물속을 삼키기라도 할 듯 위협적으로 흔들렸다. 그 검은 눈이 내 얼굴을 보고 그대로 ... 포르륵, 터져 나오는 물방울들에 기겁했다. 도망치려 했지만 어색한 두 다리가 물속에서 허우적거린다. 도망도 못가고 그물에 얻어걸린 물고기 마냥 물 밖으로 끄집어 내지면, ... 수많은 인간들과 푸른 하늘이 시원하게 흩날렸다. 난생 처음 보는 장관이라면 장관이었다.

 

“22번째의 계승자 주오수의 인연, 해우를 뵙습니다.”

 

늙은 뱀이 이름을 내린다. 귀가 먹먹했다. 난생 처음 듣는 요란한 음악에, 자신을 들어 올린 동족의 웃음소리에. 그리고 콜록거리다 말갛게 웃어버리는 오수의 웃음에. 눈을 꿈박거렸다. 이상해. 눈동자만 이리저리 굴리다 그냥 같이 웃어버리기로 했다. 그냥 웃어야만 할 것 같았다.

스토리텔러: 안정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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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가우리 프로젝트 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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